PMC
공격당한 pmc

크레센트 시큐리티 의 직원들.

블랙워터사 직원들, 지금은 회사명을 바꾸고 블랙워터란 이름은 훈련시설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군과 같이 전투중인 pmc. 이거 내셔널지오그래픽사의 다큐가 있었는데 당시 시위자들이 피켓을 들고 오다가 AK를 꺼내 공격해 오자 이에 반격한 내용 입니다. 당시 미군과 PMC직원들은 소수로 기지에 고립된 상태였는데 pmc직원은 "살아서 잡히지 않기 위해"라고 말하며 상황이 무척 급박했다고 합니다.

by Serpent | 2009/07/04 18:28 | 군사적 개념 | 트랙백
체첸의 러시아군.

96년 평화협정 전까지 러시아종군 기자가 촬영한 러시아군.






by Serpent | 2009/07/04 10:05 | 체첸의 개념 | 트랙백
매국노와 애국자.
난 객관적인 것이 좋다. '緣' 이라는 문화가 싫다. 인간적이 못하다 라고 할 수 도 있지만 오히려 잔혹한 것이 집단적 공동체 이다.
주관적인 시각으로 자신과 비슷한 틀에 사람은 물론 이 세계를 넣고 본다. 만약 그 틀에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른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눈물을 좔좔 뽑지 않으면 매국노가 되어버린다.

지금은 사라진 네이버 밀리터리 게시판에 누군가 한국전쟁당시 최고 사살률의 저격수가 중공군이라는 기록이 제시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짱깨'가 그럴리가 없다며 나무랐다. 분명 기록상 으론 그 중공군 저격수 확실하지만 결국 '우리나라'가 아니라서 안된단다... 나무랐던 사람들은 딱히 정치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풍토가 강하게 뿌리박혔기에 무조건적으로 싫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은 무식한 코쟁이고 중국은 떼놈, 일본은 쪽발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나라들에서도 반대되는 이야기가 있겠지만.
by Serpent | 2009/07/03 21:46 | 객관적 시각의 개념 | 트랙백
미스터술탄님의 잘못된 역사 상식 정리.
Mr술탄님의 글 입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삼단철포를 운영했다 ->
실제로는 확실치 않다. 삼단철포 괴담의 진원지는 오제 호안의 신장기(信長記)인데 이 신장기는 에도시대의 군기물(軍記物)로써 사료적 가치는 거의 없는 논픽션 소설 정도의 물건이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저격한 오케하자마 기습설과 더불어 오다 노부나가 떡밥의 진원지이며, 이것을 에도시대 전체에 걸쳐서 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민중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명치유신 이후 일본 정부나 군부에서 무비판적으로 사실인 것처럼 전사록이나 교과서에 마구 수용하여 전일본이 떡밥에 낚인 것이 진실이었다. 
 

 타케다 신겐의 기마부대는 탁월한 전투력으로 기마돌격 ->실제로는 일본 전통마의 왜소함과 더불어 충분한 돌격력을 구가할 수 없었고 일본 고래로 충격력을 사용한 돌격 창기병은 등장한 적이 없었으며 일본의 창 기마무자는 보병과 접전시 오히려 불리하기까지 했음. 전국시대에는 특히 말은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긴 장병창의 등장으로 돌격이라니 더더욱 난감해짐. 더욱이 이건 에도시대부터의 수백년떡밥.

 

 다테 마사무네는 17세기 유럽과 같은 마상 총기병을 운용하다 - > 한국에서도 다테 마사무네가 임진왜란 때 도망가다 마상총 2자루를 놓고갔다는 야사가 소개될 만큼 유래깊은 떡밥. 그러나 일본의 마상통이라는 것은 화승 점화식이라 기마총병의 기본 요소인 발화의 안정성에서 크게 뒤떨어져서 정규 야전에서 써먹을 만한 물건도 아니며 유럽도 마상 총병의 본격적 확산은 휠락과 같은 화승을 안쓰는 점화방식과 더불어 생긴 것을 유념한다면 더욱더. 특히 유럽과 같은 카라콜, 하카펠 같은 마상총기병의 위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전투술이 보이지 않으며 일본의 마상통은 호신용 화기로써의 역할 이상은 아닌 것.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의 평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인자한 부처의 화신 -> 야마오카 소하치의 본격 도쿠가와 후장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해적판명 대망)의 출간-확산과 더불어 뿌려진 떡밥. 그러나 사실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대단한 인격자도 아니었으며 겉으로 웃고 뒤통수 치는 너구리라는 평이 대세.

 

 사무라이는 전쟁 전문가이며 검술의 달인, 모든 사무라이는 기본적으로 무술가 -> 일본에서 사무라이의 모습은 시대별로 달랐으며 무장 농민으로부터 시작하여 지방 유지, 귀족의 보디가드, 군부의 실력자. 신흥 귀족, 군사 정권의 설립자, 봉건제 하의 무장, 지방 영주 등 그 모습은 계속해서 변해왔다. 특히 에도시대의 사무라이는 사회 계급화된 존재로써 보통 공무원으로써의 행정업무를 담당하였고 무술을 기본 소양 정도만 마친 사람도 상당수 되었으며 안 배운 사람은 더 많았다. 당시 공무원화된 사무라이는 군인으로써의 모습은 허리에 찬 칼 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던 셈이었지만, 그 칼조차 무겁다고 하여 칼날을 대나무로 대체시킨 타케미츠라는 형식이 존재하는 것은 이미 에도시대의 사무라이가 어떠한 존재였는가를 보여준다.

 

 명량해전은 철쇄로 일본전함을 뒤집었다 -> 한국에서 영화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뿌리깊었던 명량해전 2대떡밥 중 하나. 좁은 만에 갖힌 일본함대를 쇠사슬로 올려서 뒤집어 전투를 압도적인 유리로 이끌었다는 내용이나 실은 그만한 철자원이 있지도 않았고 쇠사슬 깔아볼 만큼 좁은 해역도 아니며, 결정적으로 참전했던 군인인 김억추의 행장에만 나오는 내용. 행장이란 자기의 전공을 과장하기 위한 자뻑자서전에 가까운 물건으로 대부분의 경우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며, 더불어 명량해전 철쇄설을 믿으려면 김억추 행장의 전함을 절단하는 김억추 칼리버, 험산준령 비켜서는 김억추 경공술, 방산천리 주름잡는 김억추 핵분열과 더불어 무신장공 김억추가까지 믿어야만 한다는 전설이 있다.

 

 명량해전때 강강수월래로 일본군을 유인하고 방심시켰다 ->역시 국영영화에서 등장하는 2대 떡밥의 하나. 믿을 수 없는 건 무신장공 김억추가와 동급.

 

 임진왜란 때 조선은 전쟁준비도 안했고 정부는 싸움만 해서 초반에 크게 발렸다-> 역시 구라. 실제로는 지방에 성을 축조하고 제승방략을 집필하여 통합 방어계획을 세워 일본의 침공에 방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실제로는 고위 군관들의 군기 해이가 문제로, 부산진까지만 해도 격렬한 저항으로 시간을 끌 수 있었지만, 지방에서 징집된 병력이 집결지에 모여 사령관을 맞이하여 방어 태세를 갖출 때까지 시간을 벌어 줘야 할 동래성 등의 방어선에서 고위 지휘관의 잇다른 도주로 사기가 급 추락하여 제대로 방어를 수행할 수 없어 준비 완료가 되기도 전에 방어선이 뚫렸고, 일본군의 고속 진격을 허용하여 집결중이던 병력이 편제가 완료되기도 전에 각개격파 당하거나 혹은 집으로 복귀한 것이 첫째 문제였다.

 

 중세시대 유럽놈들은 무식하고 저열해서 병법이란걸 몰랐고 기사 돌격만이 대세였다 ->역시 구라. 전투의 기본인 좌우익 중앙의 구분부터 명확했으며 지형상의 유리함을 얻기 위해 야전축성을 하기도 하고 우회나 측면 돌파, 식량 수송차를 이용한 대 기병 방어와 장애물 설치로 전투전면을 축소하기 위한 노력 등을 볼 수 있으며 궁시 집중을 위한 궁병의 양 측면 배치 등 전혀 떨어지지 않는 전투운용을 수행했다. 더불어 십자군전쟁 당시에도 흔히 멍청한 유럽놈의 반대측으로 잘 등장하는 효율적 이슬람은 살라딘과 바이바르스 이전까지는 대체적으로 유럽군에 밀리는 형상을 보여주었다.

 

 편전은 장거리에서 어떠한 갑주도 관통할 수 있는 슈퍼 화살이며 발사보조구인 통아는 활강총신의 역할을 하여 APFSDS탄처럼 화살을 가속시킨다 -> 2005년까지 떠돌던 떡밥. 실제로 편전과 같은 작은 화살은 낼 수 있는 힘이 한정되어있는 활에서 발사체의 무게와 크기를 가볍게 하여 멀리까지 화살을 날려보내기 위한 물건으로써 비슷한 것은 동로마의 솔레나리온 등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저중량 고속탄의 특성이 그러하듯 거리가 멀어질수록 운동에너지 손실이 커지며 관통력도 대단하지 않으며 원균도 "먼 거리에서는 편전, 중거리에서는 장전"이라고 묘사한 것을 보아 원거리용 화살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통아는 그냥 발사용 레일에 불과하다.

 

 롱보우는 단일재질로 열등하고 약하지만 각궁은 복합재라 우월하고 훨씬 강력하다 -> 롱 보우는 주목으로 만들지만 실제로는 주목의 부위별 성질이 다른 부분을 조합해서 만들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단일 재질이라고 해서 그 부분 성질이 같다고는 할 수 없으며, 각궁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사람이 당기는 것이므로 그 위력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전쟁용으로는 양측 모두 100파운드를 넘는 초강궁을 사용한 전례가 있다. 각궁이라 하더라도 뿔과 힘줄 같은 유기질 재료를 사용하여 습기와 썩는 문제가 롱보우 등에 비해 훨씬 심하며, 관리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둘의 위력상의 차이가 있다면 탄성의 차이로 인한 장력이 발사 에너지로 전환되는 효율 문제와 그에 따른 크기의 차이가 있지만, 효율 문제는 크게 위력에 영향을 주는 수준은 못되며, 롱 보우나 일본궁 같은 목제 활은 탄성 부족을 크기로 커버한다. 따라서 각궁의 우수성은 탄성과 높은 효율, 그 덕택에 같은 위력에서도 더욱 작아질 수 있는 점에 있다고 하지만 전투시의 파괴력 자체는 결국 둘다 활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며 그 차이도 그렇게 크지 않다.

 

 고구려의 개마무사는 고구려의 우수한 철기술의 산물이며 독자적인 최강 병과이다 ->고구려의 개마무사는 페르시아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로 퍼진 중장기병 병과의 고구려판일 뿐이다. 이러한 중장기병은 페르시아에서의 분류와 같이 2개 종류로 나눠지며 로마의 명칭기준을 따를 경우 말 앞부분만 갑옷으로 가리고 기병은 비교적 덜 튼튼한 갑옷을 입은 경우를 카타플락토스, 흔히 보이는 고구려 무덤 벽화에서의 모습처럼 말 전신을 갑옷으로 가리고 기병도 중무장을 갖춘 경우를 크리바나리우스(페르시아에서는 중무장이 카타플락토스, 덜 중무장이 크리바나리우스) 라고 하며, 고구려의 개마무사는 흔히 말하는 크리바나리우스에 가깝다.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갑옷의 세부 양식의 차이를 제외하면, 양손으로 휘두르는 창의 사용, 갑옷과 장비 스타일의 유사성으로 보아 페르시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남북조시대 중국에서 유행한 크리바나리우스 중장기병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백년전쟁에서 영국군 롱보우로 플레이트 아머를 펑펑 뚫어주었다 -> 역시 수백년간 믿어져온 전통있는 떡밥으로써, 흔히 크레시와 푸아티에, 아쟁쿠르라는 백년전쟁에서의 3개의 명전투가 증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그동안 이루어진 연구에 의하면, 플레이트 아머를 뚫기 위해서는 20미터라는 거리까지 접근해야 확실한 관통을 보장할 수 있으며, 열처리로 강도를 Hrc기준 45이상으로 올린 경우에는 20미터 내에서도 착용자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기 어렵다는 점이 증명되었다. 실제로는 크레시 전투의 경우 프랑스 기사들을 지원할 제노바 석궁병이 롱보우의 원거리사격을 받고 패퇴한 점과 롱보우맨들이 구덩이를 파고 장애물을 설치하는 야전축성을 통해 우위를 점했으며, 푸아티에 전투에서는 프랑스 기사들이 자연 덩쿨들 때문에 빠르게 전열에 도달하지 못하고 뱅뱅 돌아가는 동안 투사무기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져 피해가 늘어났고, 아쟁쿠르 전투에서는 비가 내린 진흙탕 지형에 승리에 눈이 멀어 대군을 갈수록 좁아지는 병목 지형에 집중시켰다가 혼란이 벌어져 진창에 빠진 상황에서 화살이 아닌 영국 보병들의 망치와 도끼에 맞아 죽어간 점등을 볼 때 모든 승리의 비결을 롱보우에게 돌리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위력에 대한 과장과 더불어, 롱보우 옹호자들은 이 3대 전투에서의 "말에서 내린 영국 기사들의 대기병 전투"로 프랑스 기사들의 전열 돌파 노력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은 잘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슬람은 타 종교를 존중하는 관용의 종교이다 ->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정확히 말해 이슬람교는 유일신교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다신교에 대해서는 적대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는 이슬람의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의 교리와 그 전파 과정을 둘러싼 여러 사건들에 기인하는 것인데,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야훼를 섬기는 같은 신을 섬기는 종교이며 기본적으로는 왜곡돼지 않은 순수한 유일신 신앙을 표방하고 있으며 십계와 신약-구약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신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같은 신을 섬기는 유대교, 기독교 등 이른바 <성서의 백성들>에 대해서는 존중하고 그 경전을 믿으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다신교는 유일신교의 근본 원리인 신의 독존성을 부정하는 교리상으로 공존이 불가능한 종교이자 예언자 무함마드은 물론이고 이전의 여러 유대교, 기독교 예언자들을 가장 박해하고 전쟁을 벌인 종교이므로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페르시아인 역사가인 라시드 앗 딘의 몽골 역사책인 <집사>에서도 불교도인 쿠빌라이 칸과 이슬람교도간의 다신교 인정 문제로 생긴 불화를 수록하고 있으며, 인도 이슬람제국인 무굴제국은 다신교인 힌두교를 믿는 인도 남부와의 공존을 이룩했으나 이슬람 광신도 "기도하는 자" 아우랑제브 황제 시절부터 교리에 따라 다신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개시하여 결국 북인도와 남인도가 대립하는 오랜 전쟁이 시작된 바 있다. 탈레반이 국제여론의 악화를 감수하면서도 바미얀 석불의 폭파를 강행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있어서이다. 이슬람교에서 다신교로 규정하는 종교로는 마니교, 힌두교, 불교, 아랍 전통 다신교 신앙이나 구약 시대의 팔레스타인 신앙 등등이 있다.

 

 기사의 플레이트 아머는 100kg에 가까운 저성능 쇠깡통 갑옷 -> 인터넷을 통해 가장 오래도록 퍼진 오해 중 하나로써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한 거짓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신을 가리는 풀 슈트의 무게는 무거워야 40kg를 넘지 않았고 플레이트 아머의 유물들은 대부분 하체 방어를 포함하는 것이 20~30kg대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기병이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전 무게의 한계로써 17세기의 퀴레시어 중장기병들은 총알을 막기 위해 두꺼워진 흉갑과 투구 때문에 다른 부분의 방어를 포기하면서까지 적정 중량인 20~30kg를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갑옷 풀 슈트 무게는 동양도 마찬가지로써, 중국의 명광개나 통수개 같은 정규 풀 슈트 또한 20~30kg대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갑옷은 총이 등장하자마자 바로 퇴출되었다 ->역시 속편한 시대 재단법으로써 오랫동안 퍼져 있던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훨씬 길고 복잡한 과정을 지니게 된다. 초기의 화승총인 아퀘버스로써는 기사의 갑옷을 확실히 관통하고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50미터 안의 거리에서부터 사격을 시작해야 했지만 이 경우 기사의 랜스돌격이라면 5~10초만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로써 총 자체로는 도저히 기사의 돌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이 약점은 4~6미터의 장창인 파이크로 보완되었는데 긴 길이로 기사의 랜스보다 짧지 않은 길이로 교전할 수 있었으며 단단한 방진은 기사의 적진 돌파를 더 어렵게 했고 자연히 돌파를 위해 많아진 돌격 횟수에서 총에 의한 피해가 심해졌다. 정규 화승총이 등장했던 15세기 후반부터16세기 중반까지는 이처럼 기병이 열세인 감이 있엇지만 이후 적 파이크 방진에 직접 부딪치지 않고 권총으로 돌아가면서 사격하여 방진을 약화시키는 카라콜전법이 등장하면서 느려터지고 둔중한 파이크 방진은 위기를 맞게 된다. 적 기병의 돌격이 잘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서 16세기를 거쳐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방진 내에서 총병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지만 총알 막는 갑옷 퀴레시어 아머로 무장한 권총 중기병 퀴레시어의 카라콜 전법은 기병대간의 전투에서 우위를 점했고 파이크 방진에 대한 전투에서도 우월함을 증명하면서 기병의 숫자가 늘어나다가 결국 17세기 중반을 지나 위력을 유지하면서도 총의 경량화가 가능해지고 부싯돌식 발화방식의 보급으로 총의 화력이 증가한데다 총검의 도입으로 총병도 백병전에서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으며, 빠르게 가져다 쏠 수 있는 경포가 늘어나 총체적인 화력에서 보병들에게 밀리게 된 기병은 보병방진에 정면으로 맞서는 임무를 포기하며 결국 중갑옷을 벗고 정찰 기습 추격 유격전 등의 기동전 임무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화승총의 실용화에서 파이크 장창의 폐기에 이르기까지 기병이 갑옷을 벗기까지는 거의 200년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쇠를 달구어 접어 강화시키는 접쇠기법은 일본에만 있다 -> 접쇠는 강화라기보다도 철에 섞인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하는 공정이다. 북유럽에서는 이런 접쇠를 통해야만 좋은 쇠를 얻을 수 있엇으며, 검이라면 반드시 접쇠를 해야만 했다. 이러한 접쇠는 대체적으로 강철 제련술의 열등함, 혹은 지형상 불순물이 많은 철밖에 구하지 못할 경우에 발생하는 기술이며 일본의 경우는 일본도의 재료가 모래 형태의 사철이므로 이를 녹여 쇠를 뽑아낼 경우 엄청난 불순물들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이 접쇠를 하는 것이다.

 

 각 부위 성질이 다른 쇠를 배치하며 도검의 내구성을 올리는 기술은 일본도 고유의 것이다 -> 실제로는 이러한 사람들이 잡쓰레기 취급하는 서양검도 10~11세기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바이킹의 후예 노르만인들의 도검 노르만 소드에 보면 그러한 형태가 있다. 칼 중앙은 부드러운 철을 사용하고, 칼날 부분은 단단한 철을 이용하여 열처리한 물건으로써 그 원리는 일본도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노르만 소드에서 보이는 이 형태는 이후 다시 나타나지 않는데, 이러한 방식이 비록 높은 품질을 얻을 수는 있지만 성능에 비해 너무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강철 재련술이 발달하고 열처리 기술이 좋아져 굳이 그러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품질의 도검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기술은 이미 전국시대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기술이며 전국시대 중국의 경우 우선 칼몸을 비교적 연하게 제조하고, 이렇게 주조한 칼몸을 다시 칼날을 주조하는 거푸집에 물려서 이번엔 단단한 청동칼날을 주조해서 2중 캐스팅으로 제조하는 기술이 있었다. 또한 철제 도검에서 가운데를 단단한 강철, 양 옆을 비교적 무른 강철로 감싸는 이른바 산마이 방식도 중국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된 방식이었다.

 

 서양에는 검술이 없었고 그나마 펜싱이 전부였다 ->인터넷의 떡밥 중 하나. 그러나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할 수 있게 된 서양 검술에 대한 영상과 각종 자료들은 그러한 편견을 단숨에 불식시키며, 특히 독일 장검술에서 보이는 카운터어택 기술과 일본 고류검술 기술과의 비슷함은 서양의 검술 수준이 이미 상당함을 말해 준다. 특히 많은 사람들은 독일 장검술의 고급기술과, 일본 검도에서의 검도의 본 동작과 상통하는 이치에 감탄하고 있음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by Serpent | 2009/07/03 21:29 | 너의 개념 | 트랙백
식이요법에 대해.
난 90kg이상 나간 적도 있고 푸시업 하나 못할 정도로 저질 체력이였던 적도 있다.
게다가 운동의 역사가 그리 순탄치 못하다. 부상도 잦았고 운동을 시작하고 수술을 두번이나 해야 했다.

하지만 운동 만큼 어렵고 난해한 것 이 바로 식이요법이다. 사람들은 유명 잡지나 개개인이 저마다
주장하는 이론들 속에서 혼란해 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요령을 알게 되었다. 다음은 내가 알아낸 식이요법의 요령이다.

1. 실험은 피할 수 가 없다.

사람마다 체질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사상체질이다 혈액형이나 체형이다 뭐다 하지만 그마저도 너무 포괄적인 개념일 뿐이다.
저마다 맞는 음식과 운동, 휴식이 다 다르다. 결국 시간이 걸릴지라도 자신의 몸에 관한 실험은 필수 적이다.
(당연히 몸에 맞을 것이다 하는 음식도 사실은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우유나 콩등...) 

2. 무서워 하지 마라.

식이요법중 새로운 음식을 먹거나 새로운 계획에 따라 휴식을 취할 때 사람들은 그로인해 부작용이 생길까 두려워 한다. 허나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부작용이 좀 일어나면 어떤가. 누구 나가 그 정도는 이겨 낼 수 있다. 조급해 하지마라. 어느날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은 당신의 욕심 뿐이다.

3. 다른 이의 말에 현혹되지 마라.

몸만들기는 우직함이 필요하다. 유행하는 운동법이나 다이어트 식단 보다
꾸준함과 성실함을믿어라 굳이 식요요법이나 운동법을 바꾼다면 심사숙고가 필요할 것이다.
by Serpent | 2009/07/03 16:32 | 몸만들기의 개념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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